이 글은 2026년 5월 27일자 Financial Times에 게재된 글입니다.
유럽은 지금 막대한 규모의 자본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일부 추산에 따르면 현재부터 2030년까지 연간 자금조달 수요는 1조 유로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지출 계획과 세입 간의 격차가 상당히 확대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정부 재정은 이미 크게 압박받고 있으며, 은행만으로는 이러한 자금 부족을 메우기 어렵습니다. 은행들은 이미 유럽 기업 대출의 8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Mario Draghi, Enrico Letta, 그리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까지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점은 명확합니다. 유럽이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고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은행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자본시장을 키우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일까요? 일부 긍정적인 신호도 나타나고 있지만, 핵심 자금조달 수단 중 하나인 증권화는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집행위원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저축투자연합(SIU)'을 출범시켰지만, 이후 제안된 증권화 관련 정책은 현실을 반영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은 자금조달에 필요한 과감한 개편 대신 제한적인 정책을 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증권화는 은행이 주택담보대출, 자동차 대출, 중소기업 대출 등을 묶어 채권 형태로 투자자에게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입니다. 이를 통해 은행은 가계와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더욱 확대할 여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증권화 상품은 저축자와 은퇴자에게도 장점이 있습니다. 경기 하락 국면에서도 분산투자 효과와 함께 비교적 안정적인 인컴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2015년 이후 발생한 다섯 차례의 시장 스트레스 국면을 살펴보면, 증권화 채권이 우량 회사채보다 더 나은 성과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유동성 측면에서도 크게 개선되어, 현재는 회사채 시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증권화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으며, 이는 일정 부분 정당한 평가였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증권화 구조 자체가 아니라, 당시 부실한 대출 심사와 낮은 신용도의 대출에 있었습니다. 이후 제도 개혁이 진행되면서 대출 심사 기준이 강화되었고, 은행은 자사가 발행한 증권화 상품의 일부를 직접 보유하도록 의무화되었습니다. 또한 투자자에 대한 정보 공개도 개선되었습니다.
아울러 현재 증권화 자산의 상당 부분은 AAA 등급이나 투자등급 등 비교적 높은 신용도를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맞물리면서 지난 15년 동안 유럽과 미국의 채무불이행률은 거의 0%에 가까운 낮은 수준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증권화 시장은 여전히 매우 위축된 상태이며, GDP 대비 비중은 약 0.3%에 불과합니다. 이는 미국의 약 4%와 크게 대비됩니다.
이러한 차이는 시장 문제가 아니라 규제의 결과이며, 현재 재검토가 가능한 영역입니다.
대표적으로 UCITS로 알려진 유럽의 대형 펀드들은 증권화 상품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사실상 제한되어 있습니다. 1985년에 도입된 규정에 따라, 단일 발행사의 채권을 펀드 자산의 10% 이상 보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규정은 당시에는 특정 기업에 대한 지배력 집중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현재의 증권화 시장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 규정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유럽의 증권화 상품은 기업 지배 구조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 때문에, 규정의 실효성과 적합성이 모두 떨어지는 상황입니다.
특히 유럽의 증권화 거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10% 제한은 대형 UCITS 펀드의 투자 확대를 제약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UCITS는 이러한 한도를 적용받는 유일한 투자 주체입니다. 은행, 연금기금, 생명보험사 역시 개인투자자를 이해관계자로 두고 있지만, 동일한 제한을 적용받지 않습니다.
유럽의회는 SIU의 일환으로 해당 한도를 20%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집행위원회조차 이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입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조치 역시 제한적인 개선에 그칠 가능성이 있으며, 유럽이 직면한 자금조달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현재 UCITS 펀드에서 증권화 투자 비중은 대부분 한 자릿수에 그치는 반면, 미국에서는 유사한 펀드가 약 40%를 증권화 상품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만약 투자 한도를 완전히 철폐한다면 자산운용사로부터 약 1,500억 유로 규모의 잠재 수요가 현실화될 수 있고, 이후에도 매년 약 300억 유로의 신규 수요가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반면 상한선을 20%로만 확대할 경우 시장 규모는 약 200억 유로 증가하는 데 그쳐, 전체 약 1조 유로에 달하는 자금 수요의 2%를 충당하는 데 불과할 것으로 보입니다.
집중도, 유동성, 신용도와 관련된 UCITS 펀드의 기존 보호장치를 유지하면서 해당 규제를 조정할 경우, 유럽의 증권화 시장은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의미 있는 규모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정책 입안자들이 이러한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증권화는 유럽의 자금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본시장을 더욱 발전시키고 자금 조달 구조를 다각화하여 시스템 리스크를 줄임으로써 유럽의 기업과 저축자, 은퇴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반대로 이러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미국 대비 유럽의 성장 격차는 지속되거나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