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경제 지표들만 보면 미국 경제는 견조해 보입니다. AI 투자가 늘면서 설비투자와 주식시장을 지지하고 있고, 자산가격 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도 소비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실질 GDP 역시 플러스 성장을 유지하고 있고, 민간 부문의 재무 상태도 안정적인 편입니다. 많은 고소득 및 부유층 가구는 주식시장 상승의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취약성이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특히 가계는 이미 소득 증가가 제한된 상황에서 추가적인 구매력 감소까지 감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관세, 에너지 가격 상승, 임금 증가 둔화 등이 겹치면서 실질 가처분소득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원래 가계는 현재 소득이 일시적으로 줄어들더라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충격이 잇따르면서 저축률이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고, 미래 소득에 대한 기대도 점차 약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AI는 많은 근로자에게 새로운 불확실성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소비 증가율도 소득 수준에 맞춰 낮아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비가 둔화되면, 그 영향은 경제 전반으로 퍼질 수 있습니다.
소득과 소비: 복잡하게 얽힌 구조
과거 데이터와 경제 이론은 소득과 소비 간의 관계가 보다 복잡한 구조를 보이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1950년대 후반, 경제학자이자 훗날 노벨상 수상자가 된 Milton Friedman은 '영구소득가설(PIH)'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소비는 현재 소득만이 아니라, 앞으로 기대되는 평생 소득에 의해 결정됩니다. 따라서 일시적인 소득 충격은 소비에 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가계는 소득 변화가 일시적이라고 판단하면(예: 일회성 에너지 가격 급등)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넘기지만, 지속적이거나 구조적인 변화로 받아들일 경우(예: 노동시장의 구조적 약화) 소비를 줄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구소득가설에 따르면 소비는 예상치 못한 변화나 영구소득과 관련된 새로운 정보에만 반응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 데이터에서는 현재 소득의 예측 가능한 변화에도 지나치게 크게 반응하는 모습이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를 '과도한 민감성'이라고 부릅니다. 역사적으로 실질소득과 소비는 대체로 같은 흐름을 보여 왔습니다(차트 1 참조).
이후의 연구를 통해 이러한 과도한 민감성의 근본적인 원인을 밝혀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전체 가계 중 일부는 월급에 의존해 생활하거나 재정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으며, 이러한 가계는 실질소득 충격이 일시적이라고 인식하더라도 소비를 바로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소득이 줄어들더라도 저축을 활용하거나 자산 효과, 일시적인 현금 유입 등을 통해 소비를 일정 기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실질소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완충 수단이 소진된 이후에는 소비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연구에 따르면, 불확실성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저축과 소비 결정은 평생 소득에 대한 기대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리스크에도 영향을 받습니다. 보다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의 가계는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저축을 더 늘릴 수 있습니다. 또한 불확실성이 높아질 경우에는, 영구소득에 대한 기대가 변하지 않더라도 저축을 더 늘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충격 누적에 흔들리는 기대, 위축되는 소비
여러 충격이 누적되면서 실질소득이 감소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관세 전가, 에너지 가격 상승, 명목임금 증가율 둔화는 가계 세율, 사회보장 제도, 정부의 식품 지원 프로그램, 일회성 농가 소득 보조금의 변화와 맞물리며 가계에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민 정책 및 기타 정책 변화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4월 기준으로, 노동소득과 비노동소득을 모두 포함한 세후 소득을 의미하는 실질 가처분 개인소득은 전년 대비 1.1% 감소했습니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정책과 이민정책의 영향을 배제한 '근원' 소득 지표인 가용 근로자 1인당 실질 노동소득(정책 효과를 반영하지 않음)은 4월 기준 전년 대비 0.9% 감소했습니다. 이는 경기침체기를 제외하면 좀처럼 보기 어려운 수준입니다(차트 2 참조).
팬데믹 이후에는 자산 증가와 평균 저축률 하락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미국의 소비 증가율이 실질소득 증가율을 대체로 상회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소비가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가계 저축률이 이미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에 있어, 예상치 못한 충격을 버틸 여력이 크지 않습니다. 미국 경제분석국에 따르면, 4월 개인저축률은 가처분소득 대비 2.6%까지 감소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기간과 2022년 에너지 쇼크 시기를 제외하면, 1960년 이후 지표 기준으로 저축률이 이처럼 낮았던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유일한 예외는 주택 부채가 빠르게 증가했던 2004~2006년 시기였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저축률이 낮아진 데에는 자산 증가가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저축률이 앞으로 더 떨어질 여지는 크지 않습니다. 자산 증가는 고소득층에 집중된 반면, 에너지 가격과 관세 부담은 여유가 적고 소비 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에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지금의 소득 충격은 일회성이 아니라 여러 해에 걸쳐 누적된 것으로, 미래 실질소득에 대한 기대 자체를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가계의 소득 기대는 주로 노동시장 상황에 의해 결정됩니다. 최근 노동시장 활동이 안정되거나 일부 개선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여전히 여유 인력이 증가하는 모습이 여러 지표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4월 기준 실업자 수 대비 구인 공고(V/U) 비율은 약 1.0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비율은 경기침체기를 제외하고는 1 아래로 떨어지는 경우가 드뭅니다. 이직률은 팬데믹 이전 수준보다 낮고, 노동시장 여건에 대한 소비자 인식(컨퍼런스 보드의 ‘일자리가 풍부하다’ vs.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지표 포함)도 점차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근로자들이 다른 일자리 기회와 전반적인 노동시장 상황에 대해 점점 자신감을 잃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임금상승률 지표도 점차 하락하고 있으며, 특히 저임금 직종에서 그 추세가 두드러집니다.
셋째, 관련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도입이 미래 소득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Pew Research에 따르면, 근로자의 약 3분의 1은 AI 활용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자신들의 취업 기회가 줄어들 것이라고 응답했습니다. 최근 yougov.com의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미국에서는 AI의 장기적 영향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이 더 우세하며, 특히 젊은층일수록 AI에 의한 일자리 대체에 대한 우려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제 회복력의 한계
미국 경제는 견조해 보입니다. 민간 부문의 재무 상태도 대체로 안정적이고, 고소득 가구는 주식시장 상승의 혜택을 받고 있으며, AI 관련 투자가 전체 성장률을 여전히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곧 장기적으로도 안정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실질소득 지표를 보면 상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미 저축률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 가계의 구매력은 줄어들고 있고, 소득 증가가 둔화되는 가운데서도 소비를 지탱해 주던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OBBBA)’ 세금 환급 같은 일시적 지원도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소득 압박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인식이 가계에 형성되는 것입니다. 경제학자 Friedman의 '영구소득가설'에 따르면, 사람들은 현재 소득보다 앞으로 소득이 어떻게 될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현재 지난 몇 년간 이어진 실질소득 충격과 AI로 인한 노동시장 변화가 겹치면서, 가계가 미래 소득 전망에 대해 점차 더 비관적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소비도 자연스럽게 둔화될 수 있습니다. 이는 어떤 한 가지 사건 때문이라기보다, 여러 요인이 누적되며 경제의 기반이 서서히 약해져 온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